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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새벽 02:00-03:00 거리의 이야기

아리스노바 2006. 11. 8. 03:46

조용히 지내려고 했던 쌀쌀한 화요일 집에 도착하자마자 친구의 문자 한통으로 집밖으로 나섰다.
버스에서 울리는 전화벨. 평소 담배를 물때 한까치 건내주면 극구 사절하던놈이 피씨방에 흡연석에서 대기하란다. 역시 뭔가있구나 이놈.
그렇게 조용할 것만 같았던 화요일이 술로 화려해진다.

가족문제로 자주 가족회의를 하러 가셨던 엄마. 굉음이 울려퍼지는 노래방에서의 안부 문자 한통을 시작으로 나는 수요일을 시작한다.
"어찌하여아들이문자가없네뭐하시나요지금껏"
어느 부모님과 같은 띄여쓰기 없는 문자를 보면 대번 엄마의 문자구나라고 생각한다.
오늘따라 나긋한, 엄마 답지않은 문체로 날라온 문자한통. 생각에 잠겼지만 곧 내차례를 기다리는 마이크를 쥐어잡고 잊는다. 서비스 왕창 주시는 노래방 사장님 덕분에 오늘도 버스를 놓쳤다. 언제나 그렇듯 술먹은 뒤에는 제일 후미진 곳에있는 오뎅 마주머니를 반긴다. 예사롭지 않은 상술과 말빨로 대꾸시주시고, 그집 오뎅국물에는 고추가 들어가 얼큰하다.
"여기가 제일 잘 팔릴 것 같아요. 이렇게 맛있는데" 오늘도 아부.
"아니야. 저쪽에 가운데 집이 제일 잘되. 우리 큰 누나네집이지 자매야"
"정말루요?"
"응"
"위치 때문에 그런가... 흠"
"그렇겠지 우리집은 건너 건나서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야"
이런저런 이야기로 떡볶기를 서비스로 받았다. 술 값으로 지폐는 날아간지 오래... 주머니속에 굴러다니는 동전 모아 내놓으니 우리집 돼지가 좋아한다며 반기신다.
순간 우리 엄마 생각이 스친다.
"몇 시까지 하세요?"
"요즘엔 5시까지해 예전 같으면 7시 까지했는데 요즘엔 별로야, 둘째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은 6시 반까지 하지 아무래도 학생이나 어른들이나 늦게까지 이거(술잔 들이기는 재스추어를하신다)늦게 까지 하시잖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시며
"오늘은 일직 들어가야겠어, 삼중고다 아주 졸립고 배고프고 춥고"
겨울에 재래시장 가기가 꺼려질 때가 있는데 어머니뻘 되시는 분들이 몸빼바지 몇 겹끼어 집으시고 앉아있는 모습이 그냥 보기싫었다. 중학교 때였나 동네 공장이 문을 닫아 겨울에 숙주나물 공장에서 일하셨는데 공장도 아니였다. 그냥 공터에서 박스포장하고 나르고. 패딩 조끼로 버티셨던 어머니가 떠올라서 그런 모습이 보기 싫다.
"여기 맛있는 오뎅국물 있잖아요"
"두잔이나 먹었어"
종이컵을 건네자 이리저리 휘 저으셔서 가득 한잔 따라주신다.
"에휴.. 수고하세요. 나중에 또 올께요"
"그래, 잘가우"
먹는 장사하시면서 배고프다는 말. 왠지 이해가지 않았는데 은행 수수료가 무서워서 저 멀리 걸어가는 엄마를 떠올리면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걸어가다가 괜찮아 보이는 뼈 해장국(감자탕)집이 있어서 충동적으로 들어갔다. 맛은 있었는데 가격이...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엄마카드로 긁었다. 친구들도 배가 고플 것 같고 그냥 뼈 해장국이 끌렸다. 내일 푸념하시며 한소리 늘어 놓으실 것 같다. 학교에서 2천원짜리 배고픈밥 먹지말고 속든든하게 한끼 챙겨먹으라며 돈 쥐어주시는 엄마이고 엄마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아깝다. 그렇게 아깝다면서 술 값내는 내가 이해가지 않지만.

밥을 두 그릇이나 해치우며 든든히 채우고 친구들과 헤어졌다.
차가다니지 않는 차도를 생각 없이 걸으며 집가까이 골목길로 접어드는데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한 할머니가 슈퍼마켓 한구석에서 폐품을 수거하신다. 보니까 허리도 만이 굽으시고 똑바로 걷지도 못하시는듯 보인다.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앉으셔서 펴지지도 않는 허리와 힘도 없는 짧은 다리를 지탱하고 쭈그려 앉아 계신 모습. 핸드폰의 mp3를 크게 틀어놓았는데 아랑곳 하지 않으신다. 그때 시각 am 02:57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가 가장 사람이 없을 때같다. 평일이라 술에 취해 길과 사투를 벌이는 취객도 없다. 이 시간에 거리를 걷고있는 나도, 걸에서 스쳐지나가는 사연 많은 사람들.
이 시간에 밖에 나와있는 사람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저 할머님은 어떤 식구와 같기 계실까. 낮에 수거하러 다니시면 보다 젊은 할머님들에게 빼았기는 걸까?
집에 손주 손녀들에게 우유하나라도 손수 매기고 싶으신 걸까?
그래도... 이 시간에.

마음에서는 따스한 베지밀이라도 사드리고 싶고 도와드리고 싶지만... 이미 도시인이 된걸까 선뜻 쉽지도 않고 할머님이 불편해 하실까봐라는 선수치기로 마음을 접고 다시 길을 걸었다.
자주가는 삼겹살집 앞에서 길이가 무릎발치까지오는 누빈 파카를 입고, 단추는 목에서 두어개 풀었고 머리는 와인색과 짙은 갈색의 염색을 하고는 뒤로 묵은 아주머니가 급하고 안 좋은 일이 있으신듯 걱정이 눈에 훤하게 보이게 제자리를 맴돌고 계셨다. 무슨일일까?
2층 피씨방에 일이라도?
1층 삼겹살집에 무었을 두고오셨나?

새벽 2시에서 3시. 참 애매한 시간 이다.
하루를 시작하기엔 너무 이르고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이미 늦은 시각.
4시 5시도 아닌 12시 1시도 아닌 2시에서 3시 사이
짧지도 길지도 않은 거리에서 만난 저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하루의 시작도, 하루의 마감도 아닌 이시간에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위해 이 거리에 나와있는 걸까.



집에 도착해 삑-삑-삑-삑 비밀 번호를 누르니 현관문이 열리는 알림소리가 공허한 계산참에서 크게 울리며 지친 몸을 이끌고 나는 지금. 지찬 하루를 마감하고, 하루를. 수요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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