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색바랜 이미지에 아련한듯 새겨진 '八月の詩情'을 보고 있자니 왕가위 감독이 생각났다. 최근에 키린지의 음악이 너무 듣고 싶었지만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는 구입할 수가 없어 안타깝지 그지 없었다.
Lamp의 나가이(보컬/기타)가 "八月の詩情"을 듣고 있노라니 감동과 함께 갑자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니 어떤 노래일까.
Lamp의 음악을 접해 봤으니 달리는 차창밖에 손내밀며 듣는 음악과는 다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너무 달랐다. 어쩌면 <八月の詩情>의 앨범 커버가 힌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리뷰도 늦어졌다.
늦은 여름에라도 발매하고 싶다는 앨범이었지만 내가 앨범을 받을때가 9월초.
예전 같았으면 가을 냄새 물씬이었겠지만... 날씨가... 장마가 아니라 우기가 찾아온 것 같아서 음악들으며 공감하기는 더 쉬웠던 것 같다. 나름 이 변덕스러운 날씨에 감사했다.
푸른 해안선에서 달린다. 경쾌하게. 비온 뒤 가로등 조명 받고 농염하게 무르익은 도로를 달린다. 그렇게 8월의 시정까지 사랑에 관해 단편을 읽는 듯했다. 미색인듯 푸른 빛도는 가사집이 없었다면 힘들뻔 했다. 가사집 보며 이 색이 뭔지 한참동안 이 빛 저 빛 밑에서 본 기억도 난다. 자세히 보면 '八月の詩情' 부분만 정확한 미색이다. 배경보다 좀 더 흰색이다. Lamp의 감성이 이런 것 아닐까.
넘치는 햇살을 받아 과다한 노출로 희미해진 사진을 노래하는, 한 여름의 중심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한 여름에 대한 기억을 노래하는 느낌이다. Lamp의 음악을 들을때 거이 매일 비가와서 그런지 눅눅한 습기 꽉찬 날에 더욱 잘 어울릴 것 같다.
자세히 들어보면 소개글에서 처럼 많은 악기들이 나온다. 전혀 어색함 없이 어울리는 게 매력적이다. 커널형 이어폰을 써서 외부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되는 편인데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인줄 착각하고 이어폰을 뺄때도 많았다. 이어폰의 역할이겠지만(커널형 이어폰은 공간감이 적음)오랜만에 넓은 공간감도 맛봤다. 밑에서도 좋아하는 곡을 뽑겠지만 많은 악기들로 구성진 느낌 보다는 지나는 여성의 향수 냄새 처럼 자신의 역할을 알듯 모를듯 자신의 역할을 하고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昼下りの情事(하오의 정사)'와 '青い海岸線から (푸른 해안선에서)'이다. 음원을 구입하든, 앨범을 구입하시면 가사집을 꼭 보시라. 한줄 두줄 따라가다 보면 무릎을 탁치는! 가사에 흐믓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거라 믿는다.
더불어 멋진 소개글과 가사를 번역해준 줄리아 하트(Julia Hart)의 정바비(보컬/기타)에게 감사한다.
또, 디자인 전공이다 보니 비주얼적인 요소에 눈이 많이 가는데 정말 잘 만들어진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급하게 만들었다고 멋들어지는 이미지 같다 붙인 앨범이 아니다. 정확하게 계산되어진 앨범이라는 것. 그 정성에 박수를 치고 싶다.
이들이 음반을 하나 녹음해서 발매하는 것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는 앨범 디자인과 가사의 표기법 같은 부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집부터 쭉 통일되어있는 씨디 알판과 케이스 옆면 표기
스타일처럼, 램프 음반은 음악 뿐 아닌 디자인에도 일관된 고집스런 흐름 같은 것이 있다. 이들의 앨범을 여러 장 갖고 계신
분이라면 한 줄로 쭉 세워놓고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다년간의 서로 다른 작품을 통일된 형태의 디자인으로 맞출 수
있는 아티스트는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램프의 멤버들이 동경하는 6, 70년대, 즉 뮤지션쉽이 더 대중적으로 존중받고
진지한 송라이터의 음악에 사람들이 기꺼이 귀 기울여 주었던 그 시절 음반들의 디자인이 이처럼 통일성이 있었을 것이다. (멤버들,
특히 소메야는 공공연히 '요즘 음반은 거의 사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노랫말로 부른 것들을 구태여 옛스러운
취향의 한자를 빌어 앨범에 표기하는 이들 특유의 방식은 사실 우리 말로 옮길 길이 막막하긴 하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미 현대
한국어에서 '성냥'으로 굳어진 맞춤법을 굳이 고풍스럽게 '석류황(石硫黃)'으로 표기한다면 좀 비슷한 느낌을 주려나. 멤버 및 자켓
디자이너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꾸며진 앨범 커버와 아트웍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 참여한 타이포그래퍼의 서체 작업도 전체
디자인과 잘 어우러진다. 충동적으로 기획되어 8월초에 맞춰 부랴부랴 만든 음반이라기엔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정바비님의 소개글 중
나는 Lamp의 앨범은 이게 처음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앨범의 분위기/정서와 이미지와의 조화가 최고다. 처음 부터 끝까지 컨셉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카메라가 고장나서 찍어 올리고 싶지만... 추후에 올리도록 하고. 대단한 밴드, 뮤지션들은 유명 디자이너와 함께 앨범을 내놓기도 하지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많지만 내게 八月の詩情은 그렇게 어렵고 있는 척하는 디자인도, 음악도 아니였다. 아쉽게도 배송될때 부터 CD 케이스에 크랙이 있어서 아쉽지만, 좋은 기회를 주신 위드블로그, 파스텔 뮤직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제작사 소개글을 소개해드립니다. 이만한 리뷰가 없으니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섬세하게 층을 이룬 보컬 하모니, 깊이있는 어레인지로 인한 서정 사운드의 걸작.
한때 비틀즈와 비치
보이스가 동급이었던 때가 있었다. 비틀즈가 『Rubber Soul』을 발표하고 비치 보이스는 거기에 『Pet Sounds』로
응답했던 1965년의 얘기다. 몇 년 전부터 브라이언 윌슨이 다시 활발한 활동을 재개하고 음악계 전반에 비치 보이스 중/후기작들에
대한 재평가 및 뒤늦은 애정고백이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신화가 되어버린 비틀즈에 비해 비치 보이스는 많이
초라해 보인다. 비틀즈의 앤솔로지 시리즈가 나와서 몇 백 만장씩 팔릴 때 비치 보이스는 정규 앨범 2장을 한 장 씨디에 담아
'합리적인 가격에' 시장에 공급했고, 영미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곡들만으로 이루어졌던 베스트 앨범 『#1』이 발매된 후 비틀즈
팬들이 또 한번의 비틀즈 우려먹기에 불만을 표시하는 동안 비치 보이스 팬들은 게시판에서 '근데 그거 알아요? 비치 보이스가 1위곡
사이의 텀이 가장 긴 아티스트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거'라는 트리비아 퀴즈를 주고 받고 있었다. 비치 보이스의 정규 앨범들이
리마스터링 되어 탐스런 자태로 속속 재발매 되는 동안 비치 보이스는 베스트 음반 가짓수만 동네 모자란 형 머리 위의 비듬처럼
늘어갔다. 이래서야 승부가 되질 않는다. 그치만 '비틀즈냐 비치 보이스냐'라면 무조건 비치 보이스의 손을 들어주고픈 나 같은
사람들로선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으리라. '그래 돈 명예 다 비틀즈가 가지라고 해. 우린 여름 하나면 충분하니까.'
소
메야 타이요(染谷大陽, Lamp의 프론트맨)의 블로그에서 돌연 '여름을 테마로 한 앨범을 발표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이미
6월도 중순에 접어들었을 때의 일이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도도하고 쿨한 이들이 갑작스레 세상에 많디 많은 여름용 피서 음반에 한
타이틀이 추가하겠다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말이다. 해당 게시물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http://lampnoakari.jugem.cc/?eid=913)
5
월 말경 레코딩 중이던 나가이(永井祐介, Lamp의 보컬/기타)의 「8월의 시정(八月の詩情)」을 듣고 있노라니 감동과 함께 갑자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이 노래를 여름에 발표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하고 생각한 것이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미
그렇게 시작한 시점에서 텐션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나가이, 카오리(?原香保里, Lamp의 보컬/플룻), 사쿠마(佐久間磨,
Lamp의 소속사 대표) 씨 등을 모아...한
때 비틀즈와 비치 보이스가 동급이었던 때가 있었다. 비틀즈가 『Rubber Soul』을 발표하고 비치 보이스는 거기에 『Pet
Sounds』로 응답했던 1965년의 얘기다. 몇 년 전부터 브라이언 윌슨이 다시 활발한 활동을 재개하고 음악계 전반에 비치
보이스 중/후기작들에 대한 재평가 및 뒤늦은 애정고백이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신화가 되어버린 비틀즈에 비해
비치 보이스는 많이 초라해 보인다. 비틀즈의 앤솔로지 시리즈가 나와서 몇 백 만장씩 팔릴 때 비치 보이스는 정규 앨범 2장을 한 장
씨디에 담아 '합리적인 가격에' 시장에 공급했고, 영미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곡들만으로 이루어졌던 베스트 앨범 『#1』이
발매된 후 비틀즈 팬들이 또 한번의 비틀즈 우려먹기에 불만을 표시하는 동안 비치 보이스 팬들은 게시판에서 '근데 그거 알아요?
비치 보이스가 1위곡 사이의 텀이 가장 긴 아티스트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거'라는 트리비아 퀴즈를 주고 받고 있었다. 비치
보이스의 정규 앨범들이 리마스터링 되어 탐스런 자태로 속속 재발매 되는 동안 비치 보이스는 베스트 음반 가짓수만 동네 모자란 형
머리 위의 비듬처럼 늘어갔다. 이래서야 승부가 되질 않는다. 그치만 '비틀즈냐 비치 보이스냐'라면 무조건 비치 보이스의 손을
들어주고픈 나 같은 사람들로선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으리라. '그래 돈 명예 다 비틀즈가 가지라고 해. 우린 여름 하나면
충분하니까.'
소메야 타이요(染谷大陽, Lamp의 프론트맨)의 블로그에서 돌연 '여름을 테마로 한 앨범을 발표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이미 6월도 중순에 접어들었을 때의 일이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도도하고 쿨한 이들이 갑작스레 세상에 많디
많은 여름용 피서 음반에 한 타이틀이 추가하겠다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말이다. 해당 게시물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http://lampnoakari.jugem.cc/?eid=913)
5
월 말경 레코딩 중이던 나가이(永井祐介, Lamp의 보컬/기타)의 「8월의 시정(八月の詩情)」을 듣고 있노라니 감동과 함께 갑자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이 노래를 여름에 발표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하고 생각한 것이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미
그렇게 시작한 시점에서 텐션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나가이, 카오리(?原香保里, Lamp의 보컬/플룻), 사쿠마(佐久間磨,
Lamp의 소속사 대표) 씨 등을 모아 급하게 발매 제안을 했습니다. (중략) 언제나 계절과 정서를 느끼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발매 시기를 염두에 둘 수도 없고 둔 적도 없었는데요. 이번에는 「8월의 시정」이라는 곡과 함께 여름을
보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이런 일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슬로우 페이스, 나쁘게 말하면
게으름쟁이들로 알려진 두 멤버 카오리와 나가이를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밀어가며 음반 작업을 진행시키는 소메야라지만, 이 정도로
즉흥적이고 갑작스런 행보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들의 음악세계에 하나의 기점이 되었던 4번째 앨범 『램프환상(ランプ幻想)』의
음악적 성격 및 작업 방식을 떠올려보면 더더욱 그렇다. 앨범 사이의 텀도 짧고 녹음기간도 컴팩트했던 전작들에 비해, 『램프환상』은
장기간 스튜디오에서 공을 들인 끝에 완성했던 치밀하고도 정교한 작업의 결과물이었다. 한마디로 이들은 4집을 기점으로 하여
이전까지의 감미로운 팝 센티멘탈리즘의 세계에서 감상용 이지 리스닝의 극한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램프환상』을 테마로 한 2010년
4월의 내한 공연 '봄의 환상'에서 막상 『램프환상』의 수록곡을 3곡 밖에 들려주지 못했던 점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멤버들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 곡들은 라이브에서 재현하기 까다롭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런 흐름은 현재 1년 넘게 녹음 중인
5집 앨범(타이틀 미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어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 EP 『8월의 시정』에
실린 5곡 모두가 5집 세션에서 고스란히 가져온 트랙들이기 때문이다. 침착한 완벽주의자 같은 이미지의 리더 소메야가 '여름'이라는
이름의 열병에 홀리기라도 한 것일까. (공교롭게도, 이번 앨범과 함께 소메야가 추천한 앨범 목록 중에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도 있었다. 글 말미의 리스트를 참조하시라!)
물론 램프에게 여름이란 테마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아니, 돌이켜보면 램프는 늘 여름을 노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日本少年の夏(일본소년의 여름)」이나
「ア?サマ??バケイション(A Summer Vacation)」처럼 여름을 전면적으로 다룬 곡에서부터 크고 작은 여름의 풍물을 마치
하이쿠의 계어(季語, 계절성을 드러내기 위한 시적 언어)처럼 노래 곳곳에 배치한 곡들까지, 램프의 계절 감각 넘치슴 네 폭짜리
병풍에서 여름이란 철은 늘 유난스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이를테면 '아아 물보라 치는 파도여 여름이란 계절을 잊지
말아줘 태양이 바다로 질 때 나는 돌아가리'라고 노래했던 「夏に散らした小さな?(여름에 흩어 놓은 작은 사랑)」이 있었고
「?は月の蔭に(사랑은 달 그림자에)」에서는 '달 그림자에서 숨겨진 한 여름 밤의 사건'을 읊던 그들이다. 「街は雨降り(거리엔
비)」에서 초여름의 꽃 향기 섞인 비 내음을 은근히 노래의 품 안에 소환해오던, '비 내리는 거리는 마치 6월 같아서 수국이 잘
어울리지' 같은 구절은 어떤가. 이런 이들이 1년 넘게 끌어오던 정규 앨범 작업 중에서 여름에 관한 노래들만 쏙 빼서 하나의
작품을 만든 것이 바로 이 『8월의 시정(八月の詩情)』이라니 이 앨범을 수놓는 감성의 밀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램
프환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감상용 이지 리스닝의 미학은 이 앨범에서도 여전하다. 친숙한 코드진행이나 단순한 멜로디의 반복을
통한 훅의 확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섬세하게 층을 이룬 보컬 하모니, 조 바뀜과 템포 체인지는 물론 한 곡 안에서 사운드
스케이프가 몇 차례나 뒤집혀 버리는 순간들은 그야말로 전율을 준다. 음악 애호가라면 한번쯤 시간을 들여 헤드폰이나 좋은 스피커로 이
앨범을 쭉 들으면서 곡 별로 어떤 악기가 어느 순간에 나오는지 (참고로 스트링과 브라스를 포함하여 30여 가지의 악기가 이번
앨범에 등장한다) 크레딧을 짚어보길 바란다. 이처럼 복잡다단하면서도 깊이 있는 어레인지의 이면에는, 전문적인 음악교육은 커녕
변변한 악보도 그릴 줄 몰라 세션들에게 계이름만 딸랑 적어주고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쳐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램프 세 사람의
진지한 열정이 있다.
이들이 음반을 하나 녹음해서 발매하는 것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는 앨범 디자인과 가사의
표기법 같은 부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집부터 쭉 통일되어있는 씨디 알판과 케이스 옆면 표기 스타일처럼, 램프 음반은 음악 뿐
아닌 디자인에도 일관된 고집스런 흐름 같은 것이 있다. 이들의 앨범을 여러 장 갖고 계신 분이라면 한 줄로 쭉 세워놓고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다년간의 서로 다른 작품을 통일된 형태의 디자인으로 맞출 수 있는 아티스트는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램프의 멤버들이 동경하는 6, 70년대, 즉 뮤지션쉽이 더 대중적으로 존중받고 진지한 송라이터의 음악에 사람들이
기꺼이 귀 기울여 주었던 그 시절 음반들의 디자인이 이처럼 통일성이 있었을 것이다. (멤버들, 특히 소메야는 공공연히 '요즘
음반은 거의 사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노랫말로 부른 것들을 구태여 옛스러운 취향의 한자를 빌어 앨범에
표기하는 이들 특유의 방식은 사실 우리 말로 옮길 길이 막막하긴 하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미 현대 한국어에서 '성냥'으로 굳어진
맞춤법을 굳이 고풍스럽게 '석류황(石硫黃)'으로 표기한다면 좀 비슷한 느낌을 주려나. 멤버 및 자켓 디자이너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꾸며진 앨범 커버와 아트웍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 참여한 타이포그래퍼의 서체 작업도 전체 디자인과 잘 어우러진다.
충동적으로 기획되어 8월초에 맞춰 부랴부랴 만든 음반이라기엔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日曜日のお別れ(일요일의 이별)?이란 노래 속 소녀가 그립다. 2010년의 램프라면 절대 쓰지 않을 상큼하고 앙증맞은 노래.
만난 지 1년째 되는 날 느닷없는 이별 통보를 받고, 연인도 없고 할 일도 없어진 일요일 오후에 머리를 빗고 스커트 자락을
나풀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 청승맞고 사랑스러운 소녀가 나는 여전히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골의 기차역에서 친구가 만든
음악에 감동한 나머지 '아 이건 여름에 발표해야 돼'라고 연신 혼잣말을 했을, 이 실재의 '소년' 역시 너무나 좋다. 내가
극단적으로 편애하는 계절인 여름을 노래해주었기 때문일까? 이번 작품을 들으며 다시 램프가 확 가까워진 느낌도 든다. 예정에 없이
여름 노래가 쏙 빠져 버리게 된 이들의 다섯번째 정규 앨범은 또 어떤 모습을 취하게 될지도 무척 궁금해진다.
참고로 소메야 타이요가 이 앨범의 정서나 분위기의 연장선 상에서 추천한 음반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앨범과 함께 같이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Milton Nascimento / Lo Borges『Clube da Esquina』
Beach Boys 『Pet Sounds』
Curtis Mayfield 『Curtis』
Mark Eric『A Midsummer's Day Dream』
Donald Byrd 『Places And Spaces』
はっぴいえんど(해피엔드)『風街ろまん(카제마치 로망)』
Daryl Hall and John Oates 『Daryl Hall and John Oates』(1975년반)
Sean Lennon 『Into The Sun』
Todd Rundgren 『Runt. The Ballad Of Todd Rundgren』
Toninho Horta『Toninho Hor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