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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mp - 8월의 시정(八月の詩情) 뒤늦은 여름의 색다른 맛

아리스노바 2010. 9. 13. 06:30


뒤늦은 여름의 색다른 맛


짙은 색바랜 이미지에 아련한듯 새겨진 '八月の詩情'을 보고 있자니 왕가위 감독이 생각났다. 최근에 키린지의 음악이 너무 듣고 싶었지만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는 구입할 수가 없어 안타깝지 그지 없었다.

Lamp의 나가이(보컬/기타)가 "八月の詩情"을 듣고 있노라니 감동과 함께 갑자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니 어떤 노래일까.
Lamp의 음악을 접해 봤으니 달리는 차창밖에 손내밀며 듣는 음악과는 다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너무 달랐다. 어쩌면 <八月の詩情>의 앨범 커버가 힌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리뷰도 늦어졌다.

Lamp - 八月の詩情 from withblog on Vimeo.

위 동영상은 <八月の詩情 (8월의 시정)> 回想 (회상)입니다.

총 다섯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만큼 긴 호흡을 하고있다.

01  青い海岸線から (푸른 해안선에서)  
02  夢をみたくて (꿈을 꾸고파서)  
03  回想 (회상)
04  昼下りの情事 (하오의 정사) 
05  八月の詩情 (8월의 시정)

늦은 여름에라도 발매하고 싶다는 앨범이었지만 내가 앨범을 받을때가 9월초.
예전 같았으면 가을 냄새 물씬이었겠지만... 날씨가... 장마가 아니라 우기가 찾아온 것 같아서 음악들으며 공감하기는 더 쉬웠던 것 같다. 나름 이 변덕스러운 날씨에 감사했다.

푸른 해안선에서 달린다. 경쾌하게. 비온 뒤 가로등 조명 받고 농염하게 무르익은 도로를 달린다. 그렇게 8월의 시정까지 사랑에 관해 단편을 읽는 듯했다. 미색인듯 푸른 빛도는 가사집이 없었다면 힘들뻔 했다. 가사집 보며 이 색이 뭔지 한참동안 이 빛 저 빛 밑에서 본 기억도 난다. 자세히 보면 '八月の詩情' 부분만 정확한 미색이다. 배경보다 좀 더 흰색이다. Lamp의 감성이 이런 것 아닐까.

넘치는 햇살을 받아 과다한 노출로 희미해진 사진을 노래하는, 한 여름의 중심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닌 시간이 흐르고 한 여름에 대한 기억을 노래하는 느낌이다. Lamp의 음악을 들을때 거이 매일 비가와서 그런지 눅눅한 습기 꽉찬 날에 더욱 잘 어울릴 것 같다.

자세히 들어보면 소개글에서 처럼 많은 악기들이 나온다. 전혀 어색함 없이 어울리는 게 매력적이다. 커널형 이어폰을 써서 외부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되는 편인데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인줄 착각하고 이어폰을 뺄때도 많았다. 이어폰의 역할이겠지만(커널형 이어폰은 공간감이 적음)오랜만에 넓은 공간감도 맛봤다. 밑에서도 좋아하는 곡을 뽑겠지만 많은 악기들로 구성진 느낌 보다는 지나는 여성의 향수 냄새 처럼 자신의 역할을 알듯 모를듯 자신의 역할을 하고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昼下りの情事(하오의 정사)''青い海岸線から (푸른 해안선에서)'이다. 음원을 구입하든, 앨범을 구입하시면 가사집을 꼭 보시라. 한줄 두줄 따라가다 보면 무릎을 탁치는! 가사에 흐믓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거라 믿는다.
더불어 멋진 소개글과 가사를 번역해준 줄리아 하트(Julia Hart)정바비(보컬/기타)에게 감사한다.

또, 디자인 전공이다 보니 비주얼적인 요소에 눈이 많이 가는데 정말 잘 만들어진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급하게 만들었다고 멋들어지는 이미지 같다 붙인 앨범이 아니다. 정확하게 계산되어진 앨범이라는 것. 그 정성에 박수를 치고 싶다.
이들이 음반을 하나 녹음해서 발매하는 것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는 앨범 디자인과 가사의 표기법 같은 부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집부터 쭉 통일되어있는 씨디 알판과 케이스 옆면 표기 스타일처럼, 램프 음반은 음악 뿐 아닌 디자인에도 일관된 고집스런 흐름 같은 것이 있다. 이들의 앨범을 여러 장 갖고 계신 분이라면 한 줄로 쭉 세워놓고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다년간의 서로 다른 작품을 통일된 형태의 디자인으로 맞출 수 있는 아티스트는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램프의 멤버들이 동경하는 6, 70년대, 즉 뮤지션쉽이 더 대중적으로 존중받고 진지한 송라이터의 음악에 사람들이 기꺼이 귀 기울여 주었던 그 시절 음반들의 디자인이 이처럼 통일성이 있었을 것이다. (멤버들, 특히 소메야는 공공연히 '요즘 음반은 거의 사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노랫말로 부른 것들을 구태여 옛스러운 취향의 한자를 빌어 앨범에 표기하는 이들 특유의 방식은 사실 우리 말로 옮길 길이 막막하긴 하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이미 현대 한국어에서 '성냥'으로 굳어진 맞춤법을 굳이 고풍스럽게 '석류황(石硫黃)'으로 표기한다면 좀 비슷한 느낌을 주려나. 멤버 및 자켓 디자이너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꾸며진 앨범 커버와 아트웍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 참여한 타이포그래퍼의 서체 작업도 전체 디자인과 잘 어우러진다. 충동적으로 기획되어 8월초에 맞춰 부랴부랴 만든 음반이라기엔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정바비님의 소개글 중
나는 Lamp의 앨범은 이게 처음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앨범의 분위기/정서와 이미지와의 조화가 최고다. 처음 부터 끝까지 컨셉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카메라가 고장나서 찍어 올리고 싶지만... 추후에 올리도록 하고. 대단한 밴드, 뮤지션들은 유명 디자이너와 함께 앨범을 내놓기도 하지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많지만 내게 八月の詩情은 그렇게 어렵고 있는 척하는 디자인도, 음악도 아니였다. 아쉽게도 배송될때 부터 CD 케이스에 크랙이 있어서 아쉽지만, 좋은 기회를 주신 위드블로그, 파스텔 뮤직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제작사 소개글을 소개해드립니다. 이만한 리뷰가 없으니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참고로 소메야 타이요가 이 앨범의 정서나 분위기의 연장선 상에서 추천한 음반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앨범과 함께 같이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Milton Nascimento / Lo Borges『Clube da Esquina』
Beach Boys 『Pet Sounds』
Curtis Mayfield 『Curtis』
Mark Eric『A Midsummer's Day Dream』
Donald Byrd 『Places And Spaces』
はっぴいえんど(해피엔드)『風街ろまん(카제마치 로망)』
Daryl Hall and John Oates 『Daryl Hall and John Oates』(1975년반)
Sean Lennon 『Into The Sun』
Todd Rundgren 『Runt. The Ballad Of Todd Rundgren』
Toninho Horta『Toninho Hor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