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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에 관한 몇가지 본문
방대한 자료와 놀라운 인문학적 깊이를 보여주는 감독의 끔찍함에 경악한 모노노케에 대한 짧은 글을 올립니다. 사실 이건 얼마 전 읽은 책 때문이기도 한데 6장 정도로 되어 있는 그 중 마지막 장이 죠몬 문화(미야자키 감독의 역사 인식을 뒤바꿔 놓았다는 바로 그 신석기 문화)에 대한 내용으로 꽤 흥미로웠거든요. 언젠가 모두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 관계상(능력의 한계상) 흥미로운 몇몇 내용만 올리겠습니다.
1. 죠몬문화에 대해
죠몬은 일본 신석기 시대(기원전 14500~1000년 정도..)입니다. 미야자키의 일본 역사에 대한 인식을 뒤바꿔놓은 것으로 알려진 죠몬은 거대한 공공 건물, 넓은 도로, 계획적으로 조성된 공중 위생 시설 등을 갖추고 있는 일본 최고의 문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사회는 영(靈)에 대한 고도의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산(山)을 신성한 존재로 간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끔 산을 예술적 지형으로 재구성한 것도 있다고 하는군요. 아시타카의 에미시 일족은 이민족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죠몬의 후예이며, 산은 죠몬의 장신구, 칼, 문신, 토면(가면 혹은 도자기 가면) 등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둘의 만남을 남북부 죠몬인의 만남이라고 하더군요.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전제를 내세운다면 먼저 에미시 족의 돌담이나 히이님의 방에 있는 토기들은 죠몬의 그것으로 보입니다. 죠몬은 새끼줄이라는 뜻인데 토기에 새끼줄을 꽈서 찍은 모양을 내거든요. 색은 붉은 색이었는데 아시타카의 우아한 밥그릇도 같은 것입니다. 죠몬의 토기에는 옻칠을 한 것들이 많은데 그 색이 역시 붉은 색입니다. 또한 산의 토면은 죠몬의 토우나 가면 등과 같은 모양인데 원과 선 만으로 얼굴 윤곽을 그린 것이 흡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산의 주거지는 다소 인공적인 면이 있는데 이는 죠몬의 거석 분묘와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토토로의 집이었던 나무 속 토기도 죠몬토기입니다. 토토로들이 숨었던 그 항아리)
2. 활통 착용 방식
활을 사용하는건 아시타카와 병사들 뿐입니다. 이 둘의 활통 착용 방식은 매우 달라서 아시타카는 전통 방식인 어깨 착용인데 반해 병사들은 중기부터 보편적이었다는 허리춤 착용을 따릅니다.
3. 타타라바
타타라 주변의 삼림은 이미 황폐해져 있는데 이 조업은 많은 석탄을 필요로 해서 몇 번의 제철 작업을 거치면 산 하나 정도는 그대로 소멸했다고 합니다. 원래 여성은 조업하지 않는데 무로마치 시대의 화집 ‘직인가합’에 그려져 있는 여성 노동자의 모습을 보고 미야자키 감독이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미야자키 연구소의 글에 따르면 " 타타라 제철의 근원이 되는 것은 산이다. 우선 숲을 베고 목탄을 만드는 동시에 산을 부수고 흙을 물과 함께 물받이에 흘려 사철을 씻어낸다. 이 때문에 하류의 농민은 젖어버린 철포수와 산의 붕괴하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제철민은 농민의 적이고, 평지에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졌다. 타타라인이란 말은 제철민을 멸시하여 부르는 단어이기도 했다. 발로 밟는 식을 뜻하는 ‘타타라’라는 제철 기술은 점토제의 화로를 사용해 고온의 화로 속에 사철과 목탄을 넣어 순도높은 철을 채집했다. 밟는 것은 이 화로의 아래 방향으로 공기를 보내 넣는 것이다. 연료가 목탄에 닿게 하기 위해서 고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3일 밤낮을 연속으로 계속 밟지 않으면 안 되는 중노동이다. 일본 칼의 소재인 옥경 등이 이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타타라가 어느 정도로 중노동인가는 공정 과정만을 봐도 알 수 있다. 한 번의 조업에서 사철 19톤, 목탄 15톤(게다가 건조에서는 150톤)을 사용하여 철 5톤을 얻어내는데, 몇 번 이런 과정을 거치면 산 하나 정도는 소멸했다고 한다. "
4. 총기
에보시와 여자들이 사용하는 것은 카트리지형 총(자모식 총이라고도 한답니다)으로 전국시대에 개발된 것이라고 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설정은 포르투칼로부터 화승총 전래 이전에 이웃나라(아마도 중국)로부터 이시비야가 수입되어 자모식총까지 만들어진 것이라는 현실성 있는 가설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5. 니타
돼지들이 항전에 앞서 흰 진흙으로 몸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오키나와 같은 곳에 전해지는 제의로 ‘니타’라고 부르는 진흙인데 예전에는 돼지가 이를 잡기 위해 몸을 담근 장소를 가르키기도 했답니다. 이것은 신이 사냥의 공격을 위해 그리는 것을 본뜬 것이라고 합니다.
6. 길가메시
미야자키 감독은 특히 신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모노노케 히메’에 반영된 수메르의 고대 서사시인 길가메시입니다. 다음은 간략한 내용입니다.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친한 친구와 함께 인간 세계를 넓히기 위해 레바논의 삼나무 원생림(시시신의 숲의 배경이 된 곳도 삼나무 원생림이며, 죠몬의 예술적 지형 변경의 일례인 언덕의 경우도 삼나무숲이라고 합니다)을 베어 버린다. 화가 난 반신반수인 숲의 신 훔바바는 흉폭한 모습으로 길가메시를 공격하지만 결국에는 길가메시에게 목이 잘리고 만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최강병기는 청동 도끼였다. 신을 물리친 대가로 친구를 잃은 길가메시는 불사의 세계를 찾기 위해 여행을 나서는데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채 절망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길가메시는 신을 죽이고, 인간만의 왕국을 만들려던 자신의 방만함을 부끄럽게 여겨, 자연파괴와 생명조작은 파멸의 길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그리고 일본 각지에서는 소리의 정령을 코다마로 믿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1. 죠몬문화에 대해
죠몬은 일본 신석기 시대(기원전 14500~1000년 정도..)입니다. 미야자키의 일본 역사에 대한 인식을 뒤바꿔놓은 것으로 알려진 죠몬은 거대한 공공 건물, 넓은 도로, 계획적으로 조성된 공중 위생 시설 등을 갖추고 있는 일본 최고의 문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사회는 영(靈)에 대한 고도의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산(山)을 신성한 존재로 간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끔 산을 예술적 지형으로 재구성한 것도 있다고 하는군요. 아시타카의 에미시 일족은 이민족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죠몬의 후예이며, 산은 죠몬의 장신구, 칼, 문신, 토면(가면 혹은 도자기 가면) 등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둘의 만남을 남북부 죠몬인의 만남이라고 하더군요.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전제를 내세운다면 먼저 에미시 족의 돌담이나 히이님의 방에 있는 토기들은 죠몬의 그것으로 보입니다. 죠몬은 새끼줄이라는 뜻인데 토기에 새끼줄을 꽈서 찍은 모양을 내거든요. 색은 붉은 색이었는데 아시타카의 우아한 밥그릇도 같은 것입니다. 죠몬의 토기에는 옻칠을 한 것들이 많은데 그 색이 역시 붉은 색입니다. 또한 산의 토면은 죠몬의 토우나 가면 등과 같은 모양인데 원과 선 만으로 얼굴 윤곽을 그린 것이 흡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산의 주거지는 다소 인공적인 면이 있는데 이는 죠몬의 거석 분묘와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토토로의 집이었던 나무 속 토기도 죠몬토기입니다. 토토로들이 숨었던 그 항아리)
2. 활통 착용 방식
활을 사용하는건 아시타카와 병사들 뿐입니다. 이 둘의 활통 착용 방식은 매우 달라서 아시타카는 전통 방식인 어깨 착용인데 반해 병사들은 중기부터 보편적이었다는 허리춤 착용을 따릅니다.
3. 타타라바
타타라 주변의 삼림은 이미 황폐해져 있는데 이 조업은 많은 석탄을 필요로 해서 몇 번의 제철 작업을 거치면 산 하나 정도는 그대로 소멸했다고 합니다. 원래 여성은 조업하지 않는데 무로마치 시대의 화집 ‘직인가합’에 그려져 있는 여성 노동자의 모습을 보고 미야자키 감독이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미야자키 연구소의 글에 따르면 " 타타라 제철의 근원이 되는 것은 산이다. 우선 숲을 베고 목탄을 만드는 동시에 산을 부수고 흙을 물과 함께 물받이에 흘려 사철을 씻어낸다. 이 때문에 하류의 농민은 젖어버린 철포수와 산의 붕괴하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제철민은 농민의 적이고, 평지에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졌다. 타타라인이란 말은 제철민을 멸시하여 부르는 단어이기도 했다. 발로 밟는 식을 뜻하는 ‘타타라’라는 제철 기술은 점토제의 화로를 사용해 고온의 화로 속에 사철과 목탄을 넣어 순도높은 철을 채집했다. 밟는 것은 이 화로의 아래 방향으로 공기를 보내 넣는 것이다. 연료가 목탄에 닿게 하기 위해서 고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3일 밤낮을 연속으로 계속 밟지 않으면 안 되는 중노동이다. 일본 칼의 소재인 옥경 등이 이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타타라가 어느 정도로 중노동인가는 공정 과정만을 봐도 알 수 있다. 한 번의 조업에서 사철 19톤, 목탄 15톤(게다가 건조에서는 150톤)을 사용하여 철 5톤을 얻어내는데, 몇 번 이런 과정을 거치면 산 하나 정도는 소멸했다고 한다. "
4. 총기
에보시와 여자들이 사용하는 것은 카트리지형 총(자모식 총이라고도 한답니다)으로 전국시대에 개발된 것이라고 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설정은 포르투칼로부터 화승총 전래 이전에 이웃나라(아마도 중국)로부터 이시비야가 수입되어 자모식총까지 만들어진 것이라는 현실성 있는 가설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5. 니타
돼지들이 항전에 앞서 흰 진흙으로 몸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오키나와 같은 곳에 전해지는 제의로 ‘니타’라고 부르는 진흙인데 예전에는 돼지가 이를 잡기 위해 몸을 담근 장소를 가르키기도 했답니다. 이것은 신이 사냥의 공격을 위해 그리는 것을 본뜬 것이라고 합니다.
6. 길가메시
미야자키 감독은 특히 신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모노노케 히메’에 반영된 수메르의 고대 서사시인 길가메시입니다. 다음은 간략한 내용입니다.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는 친한 친구와 함께 인간 세계를 넓히기 위해 레바논의 삼나무 원생림(시시신의 숲의 배경이 된 곳도 삼나무 원생림이며, 죠몬의 예술적 지형 변경의 일례인 언덕의 경우도 삼나무숲이라고 합니다)을 베어 버린다. 화가 난 반신반수인 숲의 신 훔바바는 흉폭한 모습으로 길가메시를 공격하지만 결국에는 길가메시에게 목이 잘리고 만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최강병기는 청동 도끼였다. 신을 물리친 대가로 친구를 잃은 길가메시는 불사의 세계를 찾기 위해 여행을 나서는데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채 절망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길가메시는 신을 죽이고, 인간만의 왕국을 만들려던 자신의 방만함을 부끄럽게 여겨, 자연파괴와 생명조작은 파멸의 길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그리고 일본 각지에서는 소리의 정령을 코다마로 믿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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