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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얻은 게 더 많다고 좋아하는 그들만의 철없는 자신감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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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얻은 게 더 많다고 좋아하는 그들만의 철없는 자신감이다.

아리스노바 2007. 4. 3. 15:04
지금 세계 영화계가 멕시코를 주목하고 있다. 판의 미로를 만든 기예르모 델토로, 바벨을 만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만든 알폰소 쿠아론. 평소 남다른 친분을 과시하며 '쓰리 아미고'. 이런 별칭까지 얻은 이들 멕시코 출신 세 감독은 저마다 비상한 재주로 헐리웃 영화에 새 기운을 불어 넣었다.

바야흐로 멕시코 영화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다. 세계 영화계가 멕시코를 주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4년 북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직후에도 멕시코 영화계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협정 체결 전 한해 100여 편을 제작하던 멕시코가 협정 체결 이듬해 고작 4편만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극장 상영 영화 중 50% 이상 반드시 멕시코 영화와 중남미 영화를 상영하도록 규정한 스크린 쿼터가 자유무역 협정 체결과 함께 사라진 게 원인이었다.

물론 그 후 10년 동안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정말 조금만 나아졌다. 지난해 멕시코에서 만든 영화 60편 중 극장에 걸린 영화는 30편에 불과했다. 힘들게 영화를 만들어 놓고도 헐리웃 영화에 밀려 아예 상영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멕시코 영화들 이제는 헐리웃 영화감독이 된 '쓰리 아미고'들 조차 멕시코 정부에게 제발 좀 자국 영화를 보살피라고 촉구하고 나섯다. 이것이 멕시코 감독 전성기에 가려진 멕시코 영화의 우울한 현실이다.

한미 FTA협상이 타결됐다. 정부는 이미 146일에서 73일로 반 토막난 스크린쿼터제를 현행 유보. 즉, 다시 원상회복 조차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남은 권리마저 스스로 포기했다. 대통령은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며 영화인들에게 핀잔을 주지만 세계 역사상 자신감만으로 헐리웃 영화를 이겨낸 나라는 없다. 정치는 자신감만으로 하는지 몰라도 문화는 자존심으로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2일 선진 경제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다며 선진 문화로 도약하는 발판을 미련없이 포기해버린 우리 정부에게 영화는 스스로 꺾어버린 자존심. 그래도 얻은 게 더 많다고 좋아하는 그들만의 철없는 자신감이다.

이 글은 4월 2일 MBC 라디오 '이주연의 영화음악'에서 방송된 글을 옴겨 적은 포스트입니다.

방송 듣는데 너무 와닿아 녹음해서 오늘 옴기네요. 참으로 아쉽습니다.
이미 타결된 것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지만, 반대했던 사람들의 '이유'를 무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