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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 이들의 동맹.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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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 이들의 동맹.

아리스노바 2007. 3. 20. 17:02

프랑스인들은 벤야민을 '슬픈 사람 un triste'이라고 불렀다. 젊은 실절 벤야민의 모습은 "심오한 슬픔"이 그의 특징인 것처럼 보였다. 벤야민은 스스로를 우울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현대 심리학에서 붙이는 명칭을 경멸하여 전통적인 점성술적 개념을 끌어 온다.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



 토성의 영향은 사람을 "무감각하고, 우유부단하고, 둔감하게" 만든다고 벤야민은 말한다. 둔함은 우울한 기질의 특징 중 하나다. 실수를 잘 하는 것도 특징인데, 너무 많은 가능성을 파악하거나 현실적 감각 부족을 알아차리지 못해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그리고 자기가 바라는 조건으로 우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갈망에서 나오는 고집도 있다. 벤야민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산책을 할 떄 자신이 고집을 부리곤 했던 걸 회상한다. 어머니는 사소한 행동을 실제 삶에 대한 벤야민의 능력에 대한 테스트로 삼아, 결과적으로 그의 본성에서 무능하고 꿈꾸는 듯한 완고한 성질을 강화하게 되었다.


 "실제보다 더 느리고, 서투르고, 멍청해 보이는 버릇은 이때의 산책에 그 근원이 있다. 이 버릇에는 또 내가 나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빠르고, 더 능수능란하고 영리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부수적인 위험이 있다."


 이러한 완고함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들어오는 것의 3분의 1밖에 보지 못하는 듯한 시선"이 나온다.




 토성적 기질의 특징은 자의식과 스스로에 대한 가차 없는 태도를 들 수 있는데, 이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자아는 하나의 텍스트로, 해석해야 할 대상이다.(따라서 이 기질은 지성인에게 적합한 기질이다.) 자아는 어떤 과제이며 만들어 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이 기질은 예술가나 순교자에게 적합하다. 벤야민이 카프카에 대해 말하듯, "실패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을 구하는 사람의 기질이다.) 그리고 자아와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늘 너무나 느리다. 이들은 항상 스스로에 대해 뒤쳐져 있다.



 위장, 비밀스러움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과 복잡하고 종종 위장된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우월감, 부적절감, 당혹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스스로에게 제대로(혹은 일관되게) 지칭하지도 못하는 데서 오는 감정은, 친절함이나 빈틈없는 조작으로 위장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울증 기질은 내적 무기력감을 외부로 투사하는 경향이 있어, "거대한, 거의 물질적으로" 경험되는 불행을 영구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울한 인간이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유일한 쾌락은, 매우 강력한 것인데, 바로 알레고리다."

 『독일 비극의 기원』에서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벤야민은 알레고리는 우울증 환자 특유의 세상을 읽는 방식이라고 주장하며 "나에게는 모든 것이 알레고리가 된다."고 말한 보들레르를 인용한다. 석회된, 사소한 것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과정.



 우울한 인간은 세상이 사물이 되는 것을 본다. 그것은 피난처, 위안, 환희다.







 토성적 기질에는 내성적 성향을 의지박약 탓으로 돌리는 특징도 있다. 우울한 사람은 자기 의지가 약하다고 확신하고 의지를 발달시키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한다. 이 노력이 성공적이었을 경우 그 결과로 얻는 비대한 의지는 대개 일에 대한 강박적 헌신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수도승들의 병, 태만" 때문에 괴로워했던 보들레르는 무수한 편지와 『내면 일기』의 여러 장을 더 열심히, 쉬지 않고, 다른 것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일만 하겠다는 열렬한 맹새로 끝맺는다.("의지가 패배"할 때마다 느끼는 절망─이것 역시 보들레르의 표현이다─은 현대 예술가와 지성인, 특히 둘 다인 사람들의 특징적인 불평이다.) 이들은 일을 해야만 할 운명이다.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울한 사람의 꿈꾸는 듯한 기질도 작업의 동력이 될 수 있어, 우울한 사람은 이 환영적인 꿈같은 상태를 개척하려고 노력하거나 약물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정신집중 상태를 추구하기도 한다.




 우울한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의지의 영웅이 될 수가 있을까? 일은 약물처럼, 어떤 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우울한 인간은 중독자가 되기 쉬운데, 진정한 중독의 경험은 고독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독해야 할 필요는, 자신의 고독에 대한 씁쓸함과 함께 우울한 사람의 특징이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고독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에 구속되지 않아야 한다. 결혼에 대한 벤야민의 부정적 생각은 괴테의 『선택적 친화성』에 대한 글에 뚜렷이 나타난다. 벤야민의 영웅, 키에르케고르, 보들레르, 프루스트, 카프카, 크라우스는 결혼하지 않았다.




 우울한 사람이 일하는 스타일은 몰입, 완전한 집중이다. 몰입하지 않으면 주의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우울한 사람의 집중력은 강렬하지만 곧 소모되기 때문에 벤야민이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에도 자연적인 한계가 있었다.




 ...회초리이자 파괴자로서 작가의 상을 벤야민은 1931년 쓴 알레고리적인 '파괴적 인물'이라는 글에서 간명하고 대담하게 개략한다.



 언제나 명랑하게 작용 중이며…… 필요로 하는 것은 거의 없고…… 이해받고자 하는 생각이 없고…… 젊고 쾌활하며…… 삶은 살 가치가 없지만 굳이 귀찮게 자살을 범할 필요도 없다고 느낀다.








 - 우울한 열정(Under the Sign of Saturn), 수잔 손탁